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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사는 세조의 지병치료설과 광서(光緖)6년(1880)의 지장보살 탱화의 화기나 조선 철종 때 김정호와 최성환이 함께 편찬한 『여도비지』 등을 통해 조선시대 내내 계속적으로 사세를 유지해 오다가 19세기 말에는 상당히 번창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 영화사는 예전부터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소문나 있으며, 건물로는 대웅전·설법전·삼성각·미륵전·종무소·일주문 등이 있습니다.
1992년 송월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웅전을 중수하는 등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 대웅전
영화사의 금당 대웅전 건물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태공 월주 대화상의 원력에 의해 1997년에 완공된 목조 전각입니다.
기존에 있던 옛 극락보전을 헐고 그 자리에 규모를 크게 넓혀 중측(증축)한 건물입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지붕의 선이 화려하고 처마 끝이 날카롭게 하늘로 뻗어 있어 조선 후기 전통 법당의 웅장한 미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불단 위쪽에는 부처님이 머무시는 신성한 공간을 상징하는 정교하고 화려한 닫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안 불단에는 부처님과 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본존불은 위엄 있는 모습을 한 석가모니불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웅(大雄)'이라는 이름 자체가 '위대한 영웅', 즉 모든 번뇌와 마군(마귀)을 항복시킨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합니다. 좌우협시보살로는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마당 앞쪽에는 400년 역사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대웅전을 묵묵히 마주 보며 서 있어 깊은 고즈넉함을 더해줍니다. 대웅전 뒤편 언덕 쪽으로는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삼성각과 미륵불상이 모셔진 미륵전으로 올라가는 길이 이어집니다. 천년고찰 영화사의 전통적인 기품과 현대적인 중창 불사의 규모를 가장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전각입니다.
2) 삼성각
삼성각은 대웅전 왼쪽 위편에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있고 전면을 제외한 좌우 측면과 후면의 송판으로 된 외벽에는 산신도를 비롯한 일곱 폭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 탱화 등 3폭의 불화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비단에 그려진 지장보살 탱화는 현재 관리부실로 인하여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탱화의 좌측 하단부의 조성기에 의하면 화양사에서 광서 6년(1880) 5월 15일에 그리기 시작하여 25일에 완성하였고 상궁 이씨 등 6명이 시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시주자 중에 궁실의 내명부 소속 상궁도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궁실의 상궁도 화양사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미륵전·미륵석불입상
이절(彛寺)이 중곡동으로 옮겨진 시점에 조선 세조 임금이 이곳을 지나다가 화양사를 들렀다고 합니다. 이때 돌로 새긴 미륵(彌勒) 부처님 앞에서 세조가 기도를 올려서 지병이 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영화사 마당에 오른편 산길로 올라가 외따로 조성된 미륵전 안에 모셔진 세조의 병을 낫게 해준 미륵부처님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곡동에서 지금의 아차산 아래로 옮긴 시점이 1907년입니다. 순종이 황태자 신분이었던 광무 4년(1904)에 태자비 순명비(純明妃) 민씨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자, 고종이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묘를 만들고 며느리를 위해 묘명을 유강원(裕康園)이라 부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곡동에 있었던 영화사를 유강원(裕康園)의 원찰(願刹)로 삼아 지금의 아차산으로 옮기게 했으니 이때 4미터가 넘는 미륵부처님도 함께 이사를 왔습니다. 원래 중곡동의 옛 터에 있던 것을 여러 대의 우마차를 동원하여 며칠에 걸쳐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아차산 자락을 거슬러 올라 지금의 자리에 모시고 난 후, 전각을 세운 것은 그 뒤로도 40년이 지난 1947년의 일이었습니다.
미륵전은 자연 암반 위 언덕에 2중 기단 위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입니다.
미륵전에 봉안된 석조미륵불상은 높이 약 4m, 폭 약1.7m, 두께 40cm의 중량감 있는 입불로 아차산에 즐비한 거친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원각상(原刻像)이긴 하지만 신체는 장방형의 석재를 그대로 이용하여 편편하면서 각져있고, 조각은 부조에 가까워 입체감이 거의 없습니다. 육계를 갖춘 소발(素髮)의 머리와 넓적하고 평면적인 얼굴에 커다란 귀를 갖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나타나 있습니다. 제작 기법으로 보아 고려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륵불은 원래 머리에 둥근 갓돌(120×35cm)이 올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미륵전 바깥에 있습니다. 이 갓돌과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각을 지을 때 미륵부처님의 키를 잘못 재는 바람에 부처님의 갓을 함께 모실 수 없게 되자 전각 앞마당에 모셨다는 설과 원래 불상을 실내로 모실 때 갓돌을 벗어야 해서 밖에 두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전히 갓돌은 미륵전 옆에 놓여 있습니다.
법의는 두꺼운 통견으로 안에 승각기와 띠매듭이 보이나 옷 주름이 도식적입니다. 수인을 보면 왼손은 여원인을 결하고 있고, 오른손은 아래로 반듯이 내려져 있습니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가 많이 닳아있는데 이는 불상의 신체 일부를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기자신앙에 따른 흔적입니다. (광진문화원, 2018)
4) 설법전
설법전은 태공 월주 스님이 1992년 영화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진행한 대대적인 중창불사 과정에서 대웅전, 일주문 등과 함께 연차적으로 건립된 현대식 강당입니다.
대웅전이 엄숙한 예불과 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공간이라면, 설법전은 이름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배우는 실천적 공간입니다. 거사회 정기 법회는 물론, 어린이나 학생들을 위한 학생법회, 문화 행사, 불교 교육 프로그램 등이 이곳에서 활발하게 열립니다.
영화사 일주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접근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불교의 '사회화와 현대화'를 강조했던 월주 스님의 원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5) 석탄일 공휴일 제정 기념비
범종각 뒤쪽에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제정된 것을 기념하여 1986년에 건립한 기념비입니다. 1975년 1월 27일, 대통령령으로 음력 4월 8일인 석가탄신일이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시 이 제정 과정에서 불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송월주 스님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님이 주석했던 영화사에 비석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사는 한국 불교의 사회화가 시작된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이 비석은 우리나라 현대 불교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공휴일 지정의 내력을 담고 있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6) 느티나무
서울시 보호수 제5-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규모: 높이는 약 19.5m이며, 나무의 둘레는 약 4.1m에 달하는 웅장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나이(수령): 1982년 10월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수령이 약 370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더 흐른 현재는 약 410년 이상 된 노거수(老巨樹)입니다.
영화사가 현재의 위치로 중창되고 자리 잡은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오랜 세월 동안 사찰을 지켜온 영험한 당산목이자 아차산을 찾는 등산객과 불자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해 주는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