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영화사

서울의 아침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아차산
아차산은 해발 295.7m로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 북쪽에 있습니다.
아차산(峨嵯山)은 한강의 푸른 물줄기를 마주하며 예로부터 수도 서울의 동쪽을 굳건히 지켜온 영험하고 유서 깊은 명산입니다. 이곳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던 거대한 역사의 현장이자, 선조들의 호국 정신과 찬란한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완만하면서도 힘 있게 뻗어 나간 산세는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서울 도심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오랜 세월이 빚어낸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차산은 사계절 내내 변화무쌍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봄에는 화사한 꽃들이 산을 물들이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짙은 녹음이 청량함을 더하며, 가을의 붉은 단풍과 겨울의 고즈넉한 설경은 찾아오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아차산의 영험한 기운이 머무는 자리에 바로 천년고찰 영화사(永華寺)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차산은 오랜 세월 동안 불자들과 수행자들의 간절한 기도를 품어왔으며, 도심의 소음과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을 맑게 씻어내는 최고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아차산의 푸른 기운을 호흡하고 영화사의 맑은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냈던 참된 나를 찾는 내면의 여정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차산의 최고봉, 용마산(혹은 용마봉)은 광진구 중곡동과 중랑구 면목동에 걸쳐 있고 예전에 용마(龍馬)의 전설과 아기장수 전설로 용마가 나왔다고 전하며 봉우리가 커서 대봉이라고도 합니다.
아차산은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등으로 『고려사』에 전하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한자 표기가 변형되어 ‘아차(峨嵯)’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도 아단성(阿旦城)으로 나오며, '단'(旦)을 '차'(且)로 잘못 쓰던 것이 나중에 굳어졌습니다.
아차산성은 사적 제234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입니다. 높이 200m의 산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동남으로 한강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산중턱 이상의 부분을 둘러서 주위가 약 1km가 넘는 성벽입니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286년에 중수하였습니다.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후 고구려와 신라 간에 이곳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백제의 수도 한성이 고구려군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아단성 아래에서 피살되었으며, 이 산성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아단성(阿旦城)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이곳에선 고구려 토기 등 여러유물과 신라의 연화문와당 10여 점과 다양한 명문 자료 등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북한산성’이란 글씨가 새겨진 기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되어,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이후 아차산성의 이름을 북한산성으로 바꿔 사용했다는 학설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참고문헌
『명산고찰 따라』(이고운·박설산, 신문출판사, 1987)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네이버 지식백과] 아차산 영화사 [峨嵯山 永華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